2008년 5월 19일 월요일

귀를 막은 머슴들

국민을 섬긴다던 머슴들이 요사이는 아예 주인을 잡아먹을 듯 한데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잘 지내고 계세요?

얼마 전 청계광장을 빠져 나오다가 참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기를 만났습니다. 서로 촛불을 들고선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어제도 나왔었냐?”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죠.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던 그 친구는 “오늘은 술자리 안가고 직장동료들과 촛불을 들기로 했다”면서  불안한 마음과 복잡한 심사를 털어 놓더군요.

지난해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에 BBK사건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명박 후보자는 자신 역시 피해자라고, 이름만 빌려주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금융사기 피해자라고 하면서 어떻게 같은 입으로 경제전문가라는 둥 검증된 경영자라는 말을 내 뱉을 수 있는지 쉬이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마음속에 앙금은 남았지만 어쨌든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는 뭔가 잘해 주겠거니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큰소리 쳤으니 살림이라도 좀 낳아 지겠지….’

그리고 지금, 100일도 안된 이명박 정부는 중고등학생들까지 거리에서 촛불을 들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미 신뢰는 땅바닥이고 인터넷에는 ‘이명박 정부도 30개월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말까지 떠돌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명박의 정부의 철학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은 어찌 보면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적어도 지난 대선 때 유권자들은 그 다름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하였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다름은 인수위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국정운영에서 나타난 오류와 수정하기 어려울 정도의 성급한 일처리 탓으로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은 임기동안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걱정이 앞서는 이유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단적으로 말하자면 ‘멍청한 머슴들이 귀를 막은 채 부지런하게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발언을 들어 보면 아직 대통령이 다 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은 분명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나 하나의 목적으로 뭉쳐진 단체의 리더가 아닙니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챙길 줄 알고 어려움을 이해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언사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살아야 하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먹어야 하는 누군가를 모른 체하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와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 때문에 의구심만 커져가고 있습니다. ‘사교육비 절감’에서부터 ‘기초노령연금 20만원’까지 귀가 솔깃한 공약들은 많이 했지만 이 약속들을 실천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등록금인하 경쟁을 유도한다는 대학자율화는 오히려 등록금을 올리기에 유리하고, 물가인상이 불을 보듯 뻔한데 가스공사와 같은 공기업들은 민영화의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림살이가 낳아 질 수 있을 까요?

역대 최저의 투표율 때문에 국민들의 정치 불신과 국회에 대한 전망으로 이목이 집중되어 있던 총선 다음날, 정부는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뼛조각이 있네 없네, 국민들이 어떻게 안심할 수 있냐’고 따져 물었던 그 미국산 쇠고기가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신속하게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수입 할 수 있다’고 협상을 마무리 지어버렸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깜박하고 있을 때, 미국 순방길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과 미국의 CEO들이 먼저 박수를 쳐서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언론 보도를 보니 너무나 실용적인 정부가 최소한의 절차도 무시한 채 잘못된 번역과 팔려는 사람들이 주는 정보만을 바탕으로 불안함의 수입을 결정을 했더군요.

도대체 무엇이 머슴들을 이렇게 조급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말로는 주인을 섬기고 의견수렴을 하겠다면서 뒤로는 경부대운하를 준비하는 삽을 들고 있다면 어느 주인이 머슴을 신뢰하겠습니까?

급기야는 경찰청 홈페이지에 ‘나 잡아가라’는 수천 개의 글이 올라오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는 남은 임기동안 국정운영이 잘 될 리 없습니다. 어서 빨리 대통령이 꾸는 꿈과 의지만으로 국민모두가 행복 할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뽑아 놓은 전봇대도 다시 돌아보고 ‘잠좀 자자 밥좀 먹자’는 학생들의 외침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국정운영이었지만 피곤함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정말 더 이상은 곤란합니다. 제발 주인 말에 귀 기울이는 머슴들이기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학교] 쭈뼛거리던 아버지들 질문왕 된답니다

쭈뼛거리던 아버지들 질문왕 된답니다
[아이랑 부모랑] ‘좋은 아버지 학교’ 가보세요

» 지난해 가을 열린 제4기 ‘아이 키우는 아버지 학교’에서 참가자들이 아이의 영양·육아태도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한국청년연합회 제공
육아는 ‘아버지들의 행복추구권’
시간 부족? 성심껏 놀아주면 돼
수료뒤에도 모여 정보교환 ‘수다’

“아버지에게도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 키우는 아버지 학교’를 운영하는 한국청년연합회(KYC) 천준호 공동대표는 육아를 ‘의무가 아닌 권리’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좋은 아버지’가 되는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맞벌이가 늘어나고 육아와 가사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한국청년연합회가 지난해 4월 아버지 학교를 시작한 이유다. 천 대표는 “육아를 의무로 바라보면 그 방법을 배우는 것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만 아이와 함께 즐거운 삶을 누리는 ‘행복추구권’으로 생각하면 훨씬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아버지 학교의 교육 대상은 출산을 앞둔 예비 아빠나 36개월 이하의 자녀를 둔 아빠들이다. 오는 24일부터 열리는 다섯번째 아버지 학교에서 아동발달 부분의 강의를 맡은 도미향 남서울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아이가 부모와 정서적인 교류를 가장 많이 하는 때가 36개월 이전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도 교수는 “아이가 말을 못할 때부터 계속 대화를 시도하고 칭찬도 많이 해 주는 것이 좋다”며 “아버지가 수다쟁이가 될수록 아이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아버지들이 육아와 관련해 호소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시간 부족’이다. 돈 버느라 파김치가 되어 퇴근 뒤에도 주말에도 아이와 놀아 줄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천 대표는 “왜 꼭 오랫동안 아이와 놀아 줘야 한다고 여기는지 모르겠다”며 “양이 아니라 질로 해결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퇴근 뒤 단 10분을 놀아 주더라도, 딴짓 하지 않고 성심껏 아이와 놀아 주는 방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버지들의 경우 몰라서 육아에 참여하지 못하는 측면이 더 크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미술학원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천 대표는 “다들 강의를 들을수록 궁금증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며 “처음엔 쭈뼛쭈뼛하던 아버지들이 나중엔 강사를 화장실도 못 가게 붙들거나 엘리베이터까지 따라나와 질문을 퍼붓더라”며 웃었다. 아버지 학교 프로그램 가운데는 ‘생생토크’라는 대화시간이 있다. 육아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다. “아버지들 수다가 얼마나 대단한 줄 아세요? 직장에 선 애 키우는 이야기가 폼이 안 나는 이야기라 안 하는 것일 뿐, 멍석을 깔아 주면 1~2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죠.” 아버지들은 이 시간을 통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는다.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안 쓰는 이유는 다른 팀원들에게 미안해서야. 남성 육아휴직자가 있는 팀에 인센티브를 주면 어떨까?”, “밤에 아이가 아프면 몸 둘 바를 모르잖아? 24시간 전화 상담·정보센터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이런 토론을 통해 가까워진 아버지들은 학교가 끝난 뒤에도 수시로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커뮤니티도 만든다.

이번 5기 학교에서는 기존의 육아·영양·안전·양육태도·발달이해에 대한 교육 이외에 ‘아빠와 함께 보는 책’ 프로그램이 추가됐다. 아버지가 책을 매개로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이 소개된다. 강의를 맡은 박소희 푸른 어린이도서관장은 “게임을 하듯 즐겁게 책을 읽어 주며 아이와 대화하면 된다”며 “이런 활동은 아이와 아버지가 공동의 관심사를 갖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몫과 자리를 찾기 위한 배움, 아버지 자신을 위한 배움을 지금부터 시작하세요.” 천 대표가 아버지 학교 참여를 권하며 한 말이다.

5기 아버지 학교는 토요일인 24일(오후 6~8시30분)·31일(오후 2~7시) 이틀 동안 열리며, 참가비는 8만원이다. 부부 동반 수강도 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 대한 문의와 참가 신청은 23일까지 홈페이지(www.kyc.or.kr)나 전화(02-2273-2205)로 하면 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 왼쪽부터 추봉훈(35·서울 중랑구), 김현(38·경기 김포).

‘아버지학교’ 갔다 오니…“제가 행복해졌어요”

4기 ‘아버지 학교’를 수강했던 추봉훈(35·서울 중랑구)씨는 요즘 39개월짜리 딸 희원이와 ‘아빠 놀이터’ 놀이를 하는 데 푹 빠졌다. 아빠 놀이터는 아이와 스킨십을 늘리라는 아버지 학교 강사의 조언에 따라 추씨가 고안해 낸 놀이로, 목말·무릎시소·팔그네 등 자신의 몸을 놀이기구 삼아 아이를 태우고 놀아 주는 것이다.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니 아이 얼굴 볼 틈도 없고, 그러다 보니 희원이가 아빠 얼굴을 자꾸 잊더라고요.” 위기의식을 느낀 추씨는 ‘아버지 학교’ 문을 두드렸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아빠의 부름에 잘 대꾸도 않던 희원이는 요즘 서툰 발음으로 “아빠가 책 읽어 줘”라며 추씨에게 안긴다. 아이를 위한 이벤트를 마련하라는 조언도 큰 도움이 됐다. 주말엔 꼭 근처 어린이대공원이나 수족관에 희원이와 함께 나들이를 간다. 이제 희원이는 주말은 으레 ‘아빠와 노는 날, 그래서 즐거운 날’로 여기고 기대에 부푼다. “아이가 ‘아빠,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던 날 느꼈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네요.” 추씨는 “아이를 위해 수강했는데, 결국 내가 더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1기 아버지 학교’에 참여한 김현(38·경기 김포)씨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수강을 한 경우다. “아이가 해달라는 대로 해 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책을 읽어 줄 때도 방법은 따로 있었다. 대화를 많이 하고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 “책을 읽어 주면서 제가 연극을 해요. 돼지·호랑이 등 각각 목소리에 맞게요. 그럼 아이가 계속 그림책에 흥미를 갖더라고요.” 예전엔 10분만 놀면 엄마에게 가겠다고 떼를 쓰던 아이가 요즘엔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김씨는 프로그램 수강 뒤 아내와의 사이에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쉬는 날엔 컴퓨터를 하거나 신문만 읽어서 아내가 화를 내곤 했어요. 제 딴에는 ‘이 정도면 됐지 더 어쩌란 말이야?’ 이런 식이었고요.” 교육을 받으며 육아는 아이나 아내를 돕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김씨는 적극적으로 변했다. “둘째가 태어난 뒤 큰 아이 돌보기는 제 몫이 됐어요. 아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가정 안에서의 제 자리와 제 몫이 보이더군요.”

유선희 기자